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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밭은 제주 조천 중산간, 삼십 년 묵은 감귤밭 안에 있습니다. 버려져 있던 돌집 두 채를 삼 년에 걸쳐 고쳤고, 밭은 절반만 갈아 나머지는 숲이 하던 대로 두었습니다.
돌담은 허물지 않고 낮은 곳만 다시 쌓았습니다. 바람이 다니던 길을 막지 않으려고요.
물은 빗물을 받아 쓰고, 아침 밥상의 채소는 마당 건너 텃밭에서 옵니다.
02/
밭은 계절이 정하는 대로 돌아갑니다. 봄에는 잎채소, 여름엔 열매, 가을엔 뿌리를 거두고, 겨울엔 귤이 익습니다.
아침 일곱 시, 그날 먹을 만큼만 바구니에 담습니다. 남는 날은 이웃과 나눕니다.
밭에서 남은 것들은 소금과 식초에 절여 겨울까지 갑니다.
03/
세 채가 마당 하나를 나눠 씁니다. 안거리는 본채, 밖거리는 바깥채, 모커리는 가장 작은 곁채입니다. 하루에 세 팀만 머뭅니다.
04/
부엌은 아침에만 엽니다. 그날 밭에서 온 것들로 짓는 조식 한 상이 전부입니다. 저녁엔 마당 화로를 빌려드립니다.
조식은 여덟 시와 아홉 시 반, 두 번 차립니다. 전날 밤 아홉 시까지 말씀해 주세요.
화로는 해 지고 한 시간 뒤가 가장 좋습니다.
05/
숨밭의 절반은 곶자왈에 붙어 있습니다. 산책로 하나, 평상 두 개, 그리고 아무 일정 없음 — 여기서 할 일은 그게 전부입니다.
낮잠은 대청마루가 좋습니다. 바람이 남북으로 지나갑니다.
밤에는 불을 줄입니다. 마당에 누우면 별이 밭담 위까지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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